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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까비노 2025. 5. 2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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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키우며 “내 자식이 나쁜 선택을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호숫가 살인사건』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자식을 위해 부모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리고 부모의 사랑은 어떤 윤리적 경계 위에 놓여 있는지 시험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소설 속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언젠가 마주할 수도 있는 윤리적, 도덕적 갈등의 한 가지다.
 

"자식을 위해 부모는 어디까지?"

 
 ‘오이디푸스 왕’ 같은 고전부터 현대 문학까지,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은 반복되는 주제이다. 이 이야기들의 핵심은 결국 “너는 그 아이의 부모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부모의 사랑이 자칫 정의를 무너뜨리고, 사회적 질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문학은 늘 경계한다. 『호숫가 살인사건』은 입시라는 제도 아래에서 부모가 자식의 미래를 위해 타인의 삶을 짓밟는 과정을 통해 이 질문을 구체화한다. 인간다운 사회는 가족 중심의 정의가 아니라, 타인의 생명과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부모의 무조건적인 보호 본능은 사회 전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타인의 생명과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

 
 아이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부모에게 도덕적 인지 부조화를 유발한다. 즉,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감정과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도덕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부모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심리적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아이의 행동을 우발적인 실수로 간주하거나,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는 방식이 그 예다. 그러나 이런 심리적 반응은 일시적인 자기 방어일 뿐,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 사랑하는 아이의 행동을 바로잡는 것은 감정의 부정이 아니라, 책임 있는 양육자의 자세다. 행동은 단죄하되, 존재는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건강한 부모의 모습이다.
 

"도덕적 인지 부조화"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이며, 그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장 폴 사르트르는 개인의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면서, 타인의 선택은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식이 살인을 저질렀다면 그것은 부모의 죄가 아니라 자식 자신의 책임이다. 반면 칸트는 어떤 상황에서도 도덕 법칙은 흔들려선 안 되며, 인간은 목적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두 입장을 종합하면, 아이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고, 부모는 아이가 그 선택을 하기까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죄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그 죄의 결과를 인정하고 함께 책임지는 것이 철학적으로 성숙한 태도이다.
 

"인정하고 책임지는 태도"

 
 호숫가 살인사건을 읽고 난 후,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상상의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며 앞으로 어떤 부모가 될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인간으로서 무엇이 옳은가를 물으며, 감정과 도덕의 균형을 요구하고, 자유와 책임의 경계를 그어준다. 아이를 위해 싸우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책임이지만, 그 싸움이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져서는 안 된다. 죄를 감추는 대신, 아이가 죄와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이후의 삶을 함께 책임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윤리적인 유산이다. 이것은 단지 '내 자식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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