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접한 건 2020년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통해서다. 다른 작가들이 써 내려간 작품을 읽으며 '그래, 나도 글을 쓰고 싶어'라고 생각해놓고, 소설 한 번 읽어보지 않은 작가가 쓴 자전 에세이를 읽는다니. 뭐 순서야 어찌 됐든, 책을 읽고 나니 그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져 읽어봤고, 새로운 맛을 알고 나니 '순서는 정말 큰 의미는 없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작가가 써 내려간 소설이 궁금해진 건 어디쯤 적혀있던 <소설을 쓸 때 '문장을 쓴다'기보다 오히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에 가까운 감각이 있다> 이 문장이었다. 음악을 연주한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던 기억을 떠올려봐도, 바이올린 켤 때를 되돌아봐도,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었었다. 한 달 즈음 지나, 음악을 연주한다, 라는 말이 이해 갔다. 그의 소설에서 느껴지던 자연스러움 때문일 수도, 이 한 달 동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몰아본 영향일 수도.
소설을 연주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떤 작가일까? 그가 생각하는 <작가란 제약 따위 없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직업>이다. 역시 '경제적 자유'를 얻은 작가란 건가, 이렇게 생각도 해봤지만,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것이 맞지 싶다.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는 자연스러운 캐릭터를 등장시킬 수 있을까? '이런 캐릭터를 내놓자'라고 미리 정하는 일도 없이 말이다. 이에 작가는 '인간을 묘사하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 상대를 이해하거나 분석하는 선까지는 갈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의 겉모습이나 언행의 특징 등을 언뜻 눈에 담아두기만 하면 된다. 좋은 싫은 가리지 말고 관찰하는 것이다.'라고 귀띔해준다.
자연스러운 캐릭터를 등장시킬 준비가 끝났는데, 무대가, 소설 세계가 없다. 즉,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첫 문장 쓰기가 어렵다. 이때는 '짧은 문장을 조합하는 리듬감, 번거롭게 배배 꼬지 않는 솔직한 말투, 자신의 감정이 담기지 않은 적확한 묘사, 그러면서도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을 일부러 쓰지 않고 깊숙이 감춰둔 듯한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조합해내면 제법 멋지게 나온다.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아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야 열심히 소설을 쓸 수 있다.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루하루 꾸준히, 'One day at a time', 지속력, 바로 그것이다. 이 지속력은 신체에서 나온다. 쓸 수 있는 기초체력이 몸에 배도록 자신의 몸을 만들 필요가 있다. 작가는 그래서 달린다. 꾸준히.
마지막으로, 그가 오랫동안 소설 쓰기를 할 수 있던 마인드다. 나는 기본적으로 '결함 있는 인간이 결함 있는 소설을 쓰고 있으니까 남들이 어떻게 말하든 별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했고 실제로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면서 살아왔다. 나 혼자 즐기는 수밖에 없지. 작가는 이렇게 매일매일 소설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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