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던 2018년, 작가 정유정이 인터뷰어 지승호가 던진 '작가는 자기 테마를 어떻게 발견하나?'라는 질문에 대해 내놓은 대답이다. 마치 소설 속 주인공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 소설가는 조만간 자신을 불태우고 또 다른 창작 세계를 만들어 우리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
정유정은 1966년 8월 15일 생이다. 습작기인 1999년 <열한 살 정은이>를 출간한 이후,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를 출품해 제1회 세계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09년에는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7년의 밤 (2011)>, <28 (2013)>, <종의 기원 (2016)>이 연달아 인기를 얻으며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나도 스티븐 킹처럼 정말 나이 많이 들어서까지 끊임없이 쓰고 싶은 욕망이 굉장히 커. 불안하고, 무서운 것이 그거야,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할 이야기가 없어질까봐, 나는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지, 별 생각이 다 들어. 그러면 나 자살할 것 같은데, 그런 생각도 들고, 나는 잡초처럼 생존 본능이 강한 사람이라서 힘든 일이 있다고 '나 죽고 싶다'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거든. 그런데 소설을 못 쓰는 상황이 오면 그런 생각이 들 것 같아. 할 이야기가 없어서 '나 이제 소설 그만 써야 할 것 같다'는 상황이 오면 진지하게 나는 죽을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에 대한 인터뷰 중
정유정은 어려서부터 이야기하는 작가가 꿈이었다. 그런데 간호사로 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심사직으로 9년의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은 14년 간 식지 않았다. 글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좋았던 거다.
어느 날 스스로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었다. 글쓰기가 좋았을까? 작가라는 타이틀을 선망했을까?. 할 이야기가 없어지면 죽을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는 이야기꾼 앞에서 전자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나는 세상에 할 이야기가 없으면, 세상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그래도 살아서 밥은 잘 먹더라.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의무는 하나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
진실은 철저한 자료 조사가 필요하다. <종의 기원>을 예로 들자면, 주인공 한유진은 사이코패스다. 흔치 않은 정신세계를 재현하려면, 그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철저한 자료 조사와 현장 탐사는 기본이다. 필요하다면, 사이코패스 범죄자와 직접 대화도 해봐야 한다. 여기까지는, 범죄심리학자나 담당 수사관들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이 되었다. 연구하고 습득했던 사이코패스 정신질환을 2년간 재현했다. 그렇게 진실은 탄생했다.
목차 | 제목 | |
1부 | 등단을 향한 여정 | 죽음이 우리 삶을 관통하며 달려오는 기차라면, 삶은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무언가를 하는 자유의지의 시간이다. |
2부 | 이야기와 이야기하는 자 | 타인에게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도 스스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억을 통해서, 몽상을 통해서, 꿈을 통해서. |
3부 |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법 소재 영감이 오길 기다리지 마라 개요 소설을 시작하는 여섯 가지 질문 자료조사 아는 게 없으면 아무것도 쓸 수 없다 배경설정 소설 속 시공간은 하나의 세계다 형식 이야기에 어떤 옷을 입힐 것인가 등장인물 그들에게 고유의 임무와 위치를 부여하라 |
작가는 자기가 만드는 세계에 대해 신처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세계에선 파리 한 마리도 멋대로 날아다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
4부 | 초고-어차피 90프로를 버릴 원고 시작과 결말 초고에서 버리지 않는 부분 이야기의 톤 자신의 직관을 믿어라 플롯 어떤 사건을 절정에 배치할까 |
주인공의 실패인가, 성공인가, 아니면 아이러니인가. 어느 쪽을 선택하든 주인공의 삶은 이야기가 시작될 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어야 한다. |
5부 | 1차 수정-그 장면이 필요 없다면 과감히 지워라 서술 그 세계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주제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세계관 |
초고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을 쓴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건 영감이라고보다 내 의식 표면에 깔린 이야기에 가깝다. 이는 단기기억에 들어 있었다는 건데 대개 어딘가에서 읽었다든가, 봤다든가, 들었을 공산이 크다. |
6부 | 탈고-이제 원고를 거꾸로 읽어보라 | 중요한 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한 세계관을 정립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세계관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 |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고 난 뒤, 글쓰기 솜씨는 여전하다. 제자리다. 아니 글쓰기가 더 어려워졌다. 내 글이 형편없다는 게 보이니까. '나는 개나 소였구나'. 그럼에도 글을 쓰는 건,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어서다. 목구멍에서 발버둥 치는 소리를 내뱉으면 그 순간의 욕망은 해소되지만 정작 그 이야기가 어디로 날아갔는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적어도 이야기의 집주소는 알고 싶어서 글자로 옮긴다. 매력 없는 글을 쓰는 게 괴롭지만, 허공에 뱉어내는 것보다는 덜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정유정 작가가 내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렇게 말해줄 것 같다.
자, 다시 시작해보자고.
문법부터 새로 공부하고,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절판된 킹의 소설들을 모조리 사 모으고,
읽고, 분석하고,
필사하며 이야기가 무언인지 배워나가 봐.
그 와중에도 공모전에 꾸준히 원고를 보내.
어차피 줄기차고도 시원스럽게 미끄러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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