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비노 책방

그림자를 판 사나이

까비노 2019. 12. 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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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겹다. 미디어가 발전할수록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본다.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부자란?". 자연스럽게 자산은 어쩌고, 부동산 어쩌고 그리고 학력, 직업 등등을 읊어댄다. 그게 아니라고 외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감정이 든다. '어?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샘을 내는 건가? 다들 그렇다는데...'

 

 SNS, YOUTUBE, BLOG는 예전 TV나 책의 영향력을 뛰어넘은 지 오래이다. 이때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작은 구명조끼가 되어줬다. "당신이 생각하는 부자란?"에 대한 내 생각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부자란 자신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다 보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림자가 없어 더 큰 고통을 겪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악마에게 '금'이 무한대로 나오는 주머니를 받으며 자신의 그림자를 넘겨준다. 이때부터 그림자가 없는 주인공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지 못한다. 다시 찾아온 악마는 남자의 영혼과 그림자를 바꾸자는 제안을 한다. 이를 거절한 남자는 여행자로 남은 생을 만족하며 살아간다.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필요한 그림자와 내가 나일 수 있는 영혼 가운데 '나'를 선택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읽게 됐다. 돈, 타인과의 유대관계 그리고 나 자신. 당연하게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그게 맞는지 의심된다. 돈이 많으면 타인과의 관계는 물론, 나 자신을 찾기 쉽지 않을까? 반대로 나 자신을 찾다 보면 나머지 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저 셋을 모두 가진 사람이 있지 않을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섣부른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다. 그래서 그럴듯한 사람들을 떠올려봤다. 그들에게 돈은 일정치 이상이 되면 별 의미가 없다고 한다. 인간관계도 어느 정도 가이드가 생긴다. 하지만 '자신을 찾아가는 것'은 평생이라고 한다. 이 책의 주인공이자 저자의 모습을 투영한 슐레밀이 여행자이자 방랑자가 되는 것도 그런 맥락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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